밥을 먹고 난 후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화장실로 들어가는 입구 옆으로 서있던 쇠로 된 손잡이에 자전거를 자물쇠로 잠가뒀었다.
하지만 하모리에서의 아픈 추억으로 인해 자전거를 화장실 안으로 옮겼다.
그리고 화장실 안쪽 입구 문 바로 옆에 적당한 곳이 보여 자물쇠로 잠가두었다.
라디오 뉴스에서는 비가 조금 온다고 했다.
또 걱정이다.
제주여행 첫날 하모해수욕장에서도 라디에서는 비가 조금 아니 5-20mm가 온다고 했었다.
하지만 3시간 동안 200mm의 비를 맞고 텐트가 침몰하고 말았다.
그 다음날 민박에서 뉴스를 보니 성판악에는 더 많은 300mm 가까운 비가 왔었다는 소식을 접했었다.
텐트를 화장실 안으로 옮길까도 생각해 보았으나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하는 수 없이 화장실 건물에 바짝 붙이고는 잠을 청했다.
11시가 가까운 시각 밖이 소란스럽다.
자세히 들어보니 차를 타고 온 젊은 남녀가 주차장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잠시가 아니라 2-30분 동안 소리를 질렀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밖으로 나가 소리를 지를까도 생각해 보았으나 그냥 참았다.
그리고 조용해지자 다시 잠을 청했다.
바람에 텐트가 흔들리면 잠에서 잠시 깼다가 다시 잠이 들기를 반복했다.
5시가 조금 지난 시각 잠에서 깼다.
먼저 비로 인해 피해가 없었는지 주위를 점검했다.
역시나 피해가 있었다.
철저히 대비를 하지 못해 다시 피해를 입고 말았다.
침낭이 조금 젖어 있었고 몇 가지 옷들이 젖어 있었다.
대정에서의 피해보다는 훨씬 적었다.
먼저 아침식사를 했다.
그리고는 설거지를 하고 머리를 감고 이를 닦았다.
사실 어제 화장실을 둘러보며 장애인용 칸에서 샤워를 시도해 보기로 하였으나 비로 인해 기온이 떨어져 머리를 감을 때 무척이나 머리가 시렸다.
더군다나 장애인 칸에 수도꼭지가 없었고 밖에서 호수로 연결해 써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마침 호수는 있었으나 번거롭고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시도하지 않았다.
그리고 등산객들이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것도 역시 마음에 걸려 샤워를 하지 못했다.
이제 출발 준비를 끝마쳤다.
텐트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다.
비에 젖은 것들을 무시하고 짐을 싸야 할지 아니면 텐트 안에 펼쳐놓고 산에서 내려온 후 정리를 해야 할지를 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후자를 택해야 했다.
짐을 그대로 두고는 등산에 필요한 물품만 챙겼다.
등산바지를 입고 등산복 상의는 입지 못했다.
비에 심하게 젖어 있었다.
대신 마루사진이 있는 반팔 옷을 입고 다시 그 위에 자전거상의를 입고는 등산복 외투를 입었다.
어제 찍지 못한 GPS의 사진을 찍었다.
비에 젖은 것들은 텐트 안에 펼쳐놓고 마르기를 바랬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와 텐트의 지퍼를 모두 잠갔다.
오늘의 일정은 한라산을 관음사코스로 올라가 성판악코스로 내려오는 것이다.
관음사코스가 성판악코스보다 조금 힘들다고 하여 시도해 보고 싶었었다.
그래서 관음사야영장쪽으로 가야했다.
7시 30분이 가까워지고 있는 시각 주차장을 빠져 나와 버스를 타기 위해 길 건너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하지만 버스 시간표를 보니 조금 전 버스가 지나갔고 다음 버스는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다고 판단을 하고는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기로 한다.
간혹 등산객들이 택시를 타고 오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그리 힘든 일은 아니었다.
마침 택시 한대가 주차장을 빠져 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택시를 타고는 관음사코스 입구로 출발을 한다.
하지만 기사가 오래 전에 한번 가보고는 가본적이 없어 길을 잘 몰랐다.
관음사 근처에서 길이 갈라졌는데 그냥 그곳을 지나쳤다.
그러다 기사가 혹시 모르니 차를 돌려 보자고 하고는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조금을 달리자 관음사였다.
이 길이 아니었다.
계속 직진을 해서 그 길을 빠져 나와 다시 계속 달렸다.
길을 모르는 기사 때문에 시간과 돈만 낭비하게 생겼다.
그렇게 조금을 더 달려 관음사코스 입구에 도착을 한다.
성판악에서 관음사코스 입구까지 16km정도가 되었다.
택시비가 10,000원이 나왔고 싫은 소리 하기 싫어 그냥 10,000원을 지불한다.
택시에서 내리니 마침 슈퍼가 하나 있었다.
슈퍼로 들어가 컵라면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하지만 컵라면은 팔지 않았고 김밥을 팔고 있었다.
한 줄에 2,000원이란다.
비싸다.
김밥을 파는 곳이면 보통 한 줄에 1,000원이면 가능한 것을.
어쩔 수 없이 2줄을 구입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 한라산을 올라 컵라면을 먹을 요량으로 집에서 보온병까지 준비해 가져왔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되었다.
막 주차장 입구로 들어서는데 산악회에서 나온 사람들이 현수막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등산로 입구에서 다시 GPS 사진을 찍고는 거리를 나타내고 있는 화면을 초기화시켰다.
그렇게 준비를 하고는 8시 1분 드디어 한라산을 향배 오르기 시작한다.
출발지점의 고도는 580고지였다.
성판악휴게소보다 고도가 훨씬 낮은 곳이었다.
비가 내려서 그런지 날씨가 쌀쌀하다.
손에 자전거 장갑을 끼고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무들이 우거져 주위의 경치를 볼 수가 없었다.
그것은 1,500고지까지 계속된다.
주위에 아무도 없이 혼자 산을 올랐지만 길을 따라 올라가면 되기 때문에 어렵지는 않았다.
그리고 경사도 아주 완만해 힘들지도 않았다.
하지만 평소와는 틀리게 어제 심한 경사를 타고 올라와서 그런지 다리는 조금 무거웠다.
조금 올라가자 위치를 알리는 나무 막대가 박혀 있었다.
길의 위치를 알려주는 나무로 위급한 상황에서 현재의 위치를 알릴 수 있었고 얼마를 올라왔는지도 판단할 수 있었다.
성판악코스 5-1로 표기되어 있었다.
850고지에 이르자 길이 끊겨 있었다.
지난 여름 태풍으로 인해 제주가 많은 상처를 받았다고 들었는데 그때 발생한 일인 것 같았다.
임시로 다리를 연결하고 있었다.
아직 공사 중이라 다리를 건너기는 위험했다.
다리 상판이 깔리지 않아 좁은 쇠를 밟고 지나가야 했다.
다리 중간에는 공사용 장비가 있어 그 사이로 몸을 넣고는 겨우 지나갈 수 있었다.
무사히 다리를 건너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조심씩 힘이 들기 시작했다.
100m 정도를 가자 의자가 보였다.
누군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이내 출발을 했다.
의자는 새벽에 온 비로 인해 젖어 있었다.
조금 전 앉았던 자리에는 그나마 물이 많이 없었지만 나는 서서 쉬었다.
그리고는 물통을 꺼내 물을 마셨다.
정확히 산을 오르기 시작한지 한 시간 만에 휴식을 가졌다.
잠깐의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출발을 한다.
1170고지에 이르자 다시 끊어진 곳이 나왔다.
이번엔 더 위험하다.
바닥에서 5m정도의 다리 공사를 하고 있었다.
조금 전 다리와 틀리게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가슴이 덜컹한다.
처음 시도 후 몇 번을 망설이다 다리 건너기를 시도하였다.
끊어진 거리는 20여m정도 되었다.
다시 한번 호흡을 가다듬고는 좁은 폭의 쇠를 조금씩 걸어서 무사히 건넜다.
하지만 다리를 건너는 것 보다 더 어려운 끊어진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아주 좁은 계단 아래쪽은 계단이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간신히 올라가 아주 좁고 가파른 계단을 쉬어가며 올라갔다.
벌써부터 다리근육에 한계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또 이런 곳이 나오지나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지금까지 가장 험한 구간이었다.
계속해 산을 올라갔다.
조금 전 계단의 경사보다 완만한 경사를 따라 계속 올라갔다.
올라가다 보니 다른 등산객들이 보였다.
중년의 남녀로 구성된 등산객들이었다.
입구에서 본 등산객들은 아닌 것 같았다.
걸음이 빠른 내가 지나가자 길을 비켜주었다.
그렇게 계속 오르다 평상이 보여 조금 쉬어가기로 한다.
얼마 후 조금 전 보았던 등산객들도 앉아 쉬었다.
나는 물을 마시고 있는데 여자 한 분이 나에게 간식을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일행 중 유일한 남자분은 담배를 꺼내 피었다.
등산을 하며 피는 담배는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어제 아침 성산일출봉에서 담배를 피우던 두 명의 남자가 생각이 났다.
그렇게 간식을 먹고 휴식을 마치고는 중년의 등산객들보다 먼저 출발을 한다.
위로 향할수록 점점 힘이 들었다.
평소 같으면 조금은 쉽게 오를 그런 등산로였지만 어제의 무리와 수면을 충분히 취하지 못한 상황이라 피로가 쉽게 찾아오고 있었다.
또한 여행이 일주일째인지라 그 동안의 여행으로 인한 피로 누적도 있을 것이다.
경사가 조금 심한 구간에서는 조금 쉬엄쉬엄 올라갔다.
올라가다 힘이 들면 그 자리에서 잠시 머물렀다 다시 오르기를 반복했다.
숨이 찬 것 보다는 다리근육에 힘이 더 들었다.
아직도 주위의 경치를 구경할 수 있는 시야가 넓게 트인 그런 곳은 나오지 않았다.
어느덧 1,500고지에 이르렀다.
갑자기 주위의 나무가 작아지더니 경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해도 나기 시작했다.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안경을 벗고는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카메라에 삼각대를 연결하고는 계속 사진을 찍었다.
산을 휘둘러 구름이 에워싸고 있었다.
계곡 사이에 구름이 펼쳐진 모습이 장관이었다.
다른 등산객들도 올라와 경치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주변을 구경하고는 조금을 더 가자 바닥에 나무가 깔려 있었다.
길을 계속 걸으며 사진을 찍었다.
산은 단풍으로 물들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물들지는 않았다.
나무 바닥에 삼각대를 내려 놓고는 한라산에서 처음으로 인물사진을 찍었다.
약간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더니 계속 내리막 이었다.
그리고는 작을 개울을 하나 건너니 나무로 바닥을 깐 화장실이 나왔다.
화장실은 여러 명이 한번에 사용할 수 있도록 여러 개가 있었다.
산에 무언가를 설치하기 위해 측정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우선 나무 바닥에 앉아 좀 쉬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조금 전 평상에서 같이 쉬었던 일행이 그곳에 도착을 한다.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먹기 시작했다.
사과 한쪽을 나에게도 건넸다.
사과를 열심히 먹고는 못 먹는 부분은 산에 그냥 던졌다.
쓰레기가 아니라 분해가 되며 주변의 생물성장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가방에서 과자를 꺼냈다.
역시 나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그러면서 얘기도 주고 받았다.
그분들은 제주도에 사시는 분들이었다.
간단한 대화를 끝내고는 주변의 경치를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을 찍은 뒤 조금 더 쉬고는 인사를 건네고는 먼저 출발을 한다.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하니 경사가 아주 급하다.
해가 나고 경사가 급하다 보니 많이 더웠다.
그래서 오르막을 오르다 잠시 멈추고는 자전거상의를 벗었다.
옷을 여러 겹 입은 것이 다행이었다.
자전거상의를 가방에 넣고 물을 한잔 하고는 잠시 땀을 말린 뒤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다리의 피로도는 상당했다.
이후 상당한 경사의 등산로를 올랐다.
등산로는 대부분 바닥에 나무가 깔려 있었다.
계단이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오르다 힘이 들면 잠시 쉬었다 다시 오르기를 반복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주변의 경치는 환상적이었다.
새벽 비가 와 오전에는 흐렸지만 11시를 기점으로 해가 나기 시작해 등산하기 아주 좋은 날씨였다.
산을 오르다 사진을 찍고 경치가 아주 좋은 곳에서는 인물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산을 올랐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각 한라산 정상에 드디어 도착을 한다.
백록담이 보였다.
하지만 물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백록담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정상에는 100여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서로 모여 사진도 찍고 있었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식사도 하고 있었다.
내가 준비하려고 했던 컵라면에 김밥을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곳으로 가 김밥 두 줄을 꺼내고는 물과 함께 김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있으니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대부분 중년의 나이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서로 떠들며 큰소리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식사를 한 곳 바로 옆에는 대피소도 있었다.
그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람도 볼 수 있었다.
본부와 무전 교신하는 모습도 보았다.
관음사코스 입구를 출발하여 한라산 정상까지 대략 4시간 20분 정도 걸렸다.
걸어서 3시간 18분 쉬면서 1시간 6분이 소요되었다.
지나온 거리는 대략 9km이다.
정상에서 30여분을 머문 후 다시 성판악휴게소로 내려갔다.
한라산 정상을 오르려면 관음사나 성판악휴게소를 이용해야 한다.
또한 정상까지 오르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정시간 이후로는 산을 오를 수가 없다.
중간까지 오른다 해도 각 구간마다 통제를 하는 곳이 있다.
그래서 정상에서도 일정시간 이후로는 모두 하산을 해야 한다.
올라갈 때와는 틀리게 한번도 쉬지 않고 내려갔다.
내려가는 도중 부모를 따라 인상을 쓰며 억지로 올라가는 학생이 길 한복판을 점령한 통에 옆으로 피하다 그만 바위에 무릎을 부딪치고 만다.
급하게 내려간 나의 잘못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다니는 길 한 가운데 떡 하니 버티고 서서 비켜주지 않는 그런 모습을 보니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학생의 그런 모습도 모른 채 무신경하게 먼저 올라가는 부모도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무릎을 만지고 있는 나에게 괜찮으냐며 안부를 물어보는 다른 등산객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무릎이 아팠지만 텐트와 자전거가 걱정이 되어 지체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무릎의 통증도 점점 희미해져 갔다.
내리막이었지만 성팍악코스는 관음사코스보다 한결 평탄한 길이었다.
또한 경치도 관음사코스가 훨씬 좋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빠른 걸음으로 내려오다 보니 채 2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확히 1시간 55분만에 한라산 정상에서 텐트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텐트에 도착한 시간은 2시 47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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